새글

    최근 30일 이내 등록된 새글 이에요.
  • 시 30 : 12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시편 30편은 통곡으로 시작해서 찬송으로 끝납니다. 밤에는 울음이 있었지만 아침에는 기쁨이 왔다라고 고백하며 이어지는 고백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잠잠하지 아니하고.........." 우리는 종종 고난 속에서 입을 닫습니다. 할 말이 없고, 감사할 이유가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황이 아닌 존재를 바꾸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건져내시면, 억눌렸던 영혼이 다시 숨을 쉬고, 오래 닫혀 있던 입술이 찬송으로 열립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더이상 침묵할 수 없습니다. 건지심을 경험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내 영광으로"라는 표현은 나의 가장 깊은 존재, 나의 중심, 나의 혼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슬픔을 춤으로 바꾸셨기에 존재 전체가 찬양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은혜를 받고 금방 잊어버립니다. 위기에서 건져 주셨을 때는 울며 감격하다가 평안이 오면 조용해집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나는 잠잠하지 않겠다." 하나님, 내가 환경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살게 하신 주님 때문에 영원히 감사하겠습니다. 감사는 선택입니다. 영원히 감사하겠다는 고백은 감정적 선택이 아니라 믿음의 결단입니다. 특히 다윗과 같이 인생의 굴곡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감사가 더 깊어집니다. 위기의 밤을 통과해 본 사람만이 아침 햇살의 찬란함을 깊이 이해합니다. 혹시 지금 회복의 시간을 지나고 계십니까? 혹은 아직 밤에 머무르고 계십니까? 밤이라면 기억하십시오. 반드시 아침은 옵니다. 아침을 경험했다면 고백하십시오. 결코 잠잠하지 마십시오. 은혜를 말하고, 건지심을 노래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증언하기를 쉬지 않았던 다윗. 하나님이 하신 일을 결코 잊지 않았던 사람. 오늘도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박지현 2026-02-27 세겹줄묵상
  • 짧은묵상 시 28 : 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시편 28편은 다윗이 깊은 위기 속에서 드린 기도입니다. 그는 사람의 도움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의 고백은 단순한 신앙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전쟁과 공격 속에서 반드시 필요했던 두 가지‘힘’과 ‘방패’를 하나님께로부터 얻었다는 고백입니다. 힘은 안에서 일어나는 능력입니다.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 다시 일어나게 하는 내적 동력입니다. 방패는 밖에서 막아주는 보호입니다. 보이지 않는 공격과 예상치 못한 위기에서 지켜주는 은혜입니다. 신앙은 이 둘을 동시에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안에서 붙들어주고 밖에서 막아주시는 하나님!! 그런데 중요한 문장이 있습니다.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도움은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의지할 때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지만 의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기울어 질 때 힘이 공급되고 방패가 세워집니다. 문제의 크기보다 하나님이 더 크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두려움은 희미해지고 기쁨이 자랍니다. 하나님은 상황 이전에 우리의 마음을 먼저 회복시키시는 분입니다. 환경이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의지의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불안이 남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기쁨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결과가 바뀝니다.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한다." 찬양은 고난이 사라졌기 때문에 드리는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힘과 방패이심을 믿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찬양은 두려움을 이기는 능력이 되며, 믿음의 생명을 다시 세우는 통로가 됩니다. 혹시 마음이 지쳐 있습니까? 버틸 힘이 부족합니까? 보이지 않는 나만의 해결 못할 문제의 압박이 있습니까? 지금 고백하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힘, 나의 방패이십니다." 오늘 이 하루가 자연스러운 찬양의 고백이 넘쳐나기를 중보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박지현 2026-02-27 세겹줄묵상
  • 짧은묵상 시 9 : 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감사에는 깊이가 있습니다. 형식적인 감사가 있고 상황을 넘어선 전심의 감사가 있습니다. 다윗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한다라고 말합니다. 전심은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입니다. 절반은 걱정하고, 절반은 믿는 상태가 아닙니다. 결과를 예측하고 드리는 감사도 아닙니다. 전심은 하나님께 방향이 완전히 기울어진 상태입니다. 또한 다윗이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베푸신 기이한 일, 즉 인간의 능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은혜들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기름부어 왕으로 세우신 일, 골리앗을 쓰러뜨리게 하신 일, 수없이 위험에서 건져 주신 일. 여기서 '기이한 일'은 단순한 기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신 흔적, 보이지 않게 지켜주신 은혜, 막힐 뻔한 길과 죽을 뻔한 상황에서 건져주신 은혜입니다. 신앙은 기억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잊으면 현재의 문제는 거대해집니다. 그러나 은혜를 기억하면 문제는 상대적으로 작아집니다. 감사는 개인의 고백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전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기억에서 나옵니다. 감사가 사라진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심의 감사는 형편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에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기이한 은혜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숨 쉬는 일, 보호하심, 길을 여심, 마음을 붙들어 주심… 우리가 주목하면 감사할 이유는 끝이 없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박지현 2026-02-27 세겹줄묵상
  • 짧은 묵상 시 7 : 17 내가 여호와의 의를 찬송하며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시편 7편은 억울함속에서 시작됩니다. 다윗은 공격을 받고, 오해를 받고, 쫓깁니다. 그러나 마지막은 감사로 끝납니다. 상황은 아직 완전히 바뀌지 않았습니다. 원수는 여전히 있고, 문제도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선언합니다. "내가 감사하겠다" 여기서 감사의 근거는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 입니다. 하나님은 틀리지 않으신다는 확신. 판단이 더디 보여도 정확하다는 믿음. 그 의로우심을 신뢰하기에 감사가 나옵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해결되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시기에 지금 감사하겠습니다." 감사는 결과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성품에 대한 신뢰입니다. 또한 그는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이름은 존재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다는 것은 내 문제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이라는 표현에는 상황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억울함이 클 수록 하나님을 더 크게 보아야 합니다. 감정은 오르락내리락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은 변함없는 기준점이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면 흐트러진 삶의 중심이 다시 잡힙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다윗은 승리를 얻은 후 찬양한 것이 아니라, 해결되기 전의 순간에 찬양을 선택했습니다. 그 믿음이 불안을 감사로 바꾸고 원망을 찬양으로 바꿨습니다. 찬양은 상황의 열매가 아니라 믿음의 결단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주어집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찬양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의로우시기에 지금 찬양할 것인가?”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박지현 2026-02-27 세겹줄묵상
  • 짧은묵상 요한복음 14장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사랑은 말보다 방향입니다. 고백보다 선택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묻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순종을 ‘해야만 하는 의무’로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지키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사랑의 관계안에서 주어지는 길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것을 닮아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뜻을 헤아립니다. 사랑하면 그분의 말이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 됩니다. 그분의 뜻이 강요가 아니라 특권이 됩니다. 그분의 인도하심이 두려움이 아니라 안전이 됩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은 있는데.........." 그러나 예수님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마음은 결국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순종은 억지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흘러나오는 자발적 헌신입니다. 신앙은 감정의 고조가 아닙니다. 지속적은 선택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따라 한 걸음 움직이는 것, 그것이 사랑의 증거입니다. 사랑은 자유를 빼앗지 않습니다. 오히려 방향을 바로 세웁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관계안에 머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오늘 하루의 작은 선택이 달라질 것입니다. 말 한마디, 결정 하나, 포기 하나까지. 사랑은 결국 삶의 모양으로 증명됩니다. 오늘 하루 동안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어떤 작은 순종으로 드러날 수 있을까요? 그 선택 하나가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고, 삶을 회복시키며,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는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박지현 2026-02-27 세겹줄묵상
  • 골 3 :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여기서 "주장하게 하라"는 말은 헬라어로 '심판하다' '결정하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내 마음의 최종 결정권자를 평강에게 맡기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선택의 순간마다 계산합니다. 이익인가, 손해인가, 유리한가, 불리한가,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결정하게 하라" 평강은 감정의 영역이 아닙니다. 환경이 안정될 때 오는 결과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어진 신분의 안정감입니다. 불안이 밀려올 때, 사람의 말이 마음을 흔들 때,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그때 묻는 질문은 "이 선택이 내 안의 평강을 지키는가?" 하나님의 뜻은 소란스럽지 않고 오히려 깊은 곳에서 평강으로 말씀하십니다. 또한 이 평강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섭니다.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공동체를 깨뜨리는 선택은 아무리 합리적이어도 하나님의 방향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입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라!" 평강을 잃는 가장 빠른 길은 비교이고, 평강을 지키는 가장 견고한 길은 감사입니다. 감사는 평강을 지켜주는 영적 호흡과 같습니다. 감사를 멈추면 마음은 금세 불안, 비교, 불평으로 채워지지만, 감사를 선택하면 마음은 다시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채워집니다. 그래서 감사는 단순한 착한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의 주권을 하나님께 돌리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상황을 즉시 바꾸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때 먼저 바뀌는 것은 내 마음입니다. 평강이 다시 흐르고, 생각이 정돈되고, 믿음의 시야가 다시 살아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강이 너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라. 그리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자가 되어라!! 오늘 마음이 분주하십니까? 결정 앞에서 흔들립니까? 답은 단순합니다. 이성의 계산보다 깊은곳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평강이 '심판관'이 되게 하십시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박지현 2026-02-27 세겹줄묵상
  • 짧은묵상 삼상 15 :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 말씀은 승리의 현장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긴 왕 사울은 겉으로 보면 승리한 자였고 성공의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공이 아닌 순종을 보셨습니다. 사울은 말합니다. "좋은 것은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남겼습니다. 명분도 있고 종교적 이유도 있습니다. 사울 왕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자신이 판단하기에 좋은 것들은 남겨두고 하나님께 제사하려 했습니다. 그는 “의도는 좋았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순종 없는 제사는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생각을 더 신뢰한 것이었습니다. 부분적인 순종은 결국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은 결과보다 태도를 보십니다. 행위보다 마음의 방향을 보십니다. 여기서 "듣는 것"은 단순히 귀로 듣는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셰마'~듣고, 받아들이고, 행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말씀을 듣고도 내 계산을 더하는 순간, 순종은 변질됩니다. 우리는 종종 큰 헌신으로 작은 불순종을 덮으려 합니다. 많이 섬기고, 많이 드리고, 많이 봉사하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묻습니다. "내 말을 들었느냐?" 신앙의 본질은 화려함이 아닙니다. 정확함입니다. 열심이 아닙니다. 정렬입니다. 특히 인생의 방향을 다시 세우려는 자리에서 사업을, 사역을,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규모가 아니라 순종의 정확성입니다. 우리가 드려야 할 제사는 양이 아니라 고집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삼상 15:22는 우리에게 신앙의 핵심을 다시 가르칩니다. 순종은 부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진실하게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화려한 제사가 아니라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마음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부르심을 더욱 신뢰하고 순종하실 여러분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박지현 2026-02-27 세겹줄묵상
  • 짧은묵상 벧전 4 :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는 많은 권면 중에 "무엇보다도"라고 말합니다. 가장 우선되는 것, 가장 중요하게 붙들어야 할 것, 그것은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뜨겁게라는 말은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지속성과 의지를 의미합니다. 쉽게 식지 않는 사랑,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랑, 상처를 받아도 멈추지 않는 사랑입니다. 뜨겁게 사랑하는 것은 훈련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적 선택입니다. 불편해도 기도해 주는 선택 이해되지 않아도 기다려 주는 선택 상처받아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선택 이 선택들이 쌓일 때 우리는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뜨거운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순종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 덮는다는 것은 없는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죄보다 회복을 선택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잘못을 드러내는 데는 빠르지만 덮어주는데는 인색합니다. 비판은 쉽고 품음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 세워주기를 선택합니다. 모든 것을 폭로하는 시대에 사랑은 보호하는 힘입니다. 모든것을 판단하는 관계속에서 사랑은 기다려주는 힘입니다. 사랑할 때 공동체는 마지막 시대를 이길 힘을 얻습니다 오늘도 뜨겁게 사랑하며 감사하기에 유능하게 훈련되어지고 주의 손끝에서 다듬어질 여러분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박지현 2026-02-27 세겹줄묵상
  • 짧은묵상 골로새서 3장 14절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바울은 앞에서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참음을 말합니다. 단 하나도 귀하지 않은 덕목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합니다. "~이 모든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사랑은 덕목 중 하나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완성하는 띠입니다. 성품이 아무리 좋아도 사랑이 없으면 관계는 흩어집니다. 사랑은 연결하는 힘입니다. 용서를, 겸손을, 인내를, 온유를, 오래참음을 묶어 하나로 만듭니다. 사랑이 빠지면 옳은 뜻인데도 차갑고 정확해도 상처가 됩니다. 바울은 사랑을 “온전하게 매는 띠”라고 표현했습니다. 고대인의 옷은 흐물흐물한 천이어서 띠가 없으면 흐트러지고, 모양도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띠가 있어야 전체 옷이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은 우리의 신앙을 제자리에 세우는 중심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 긍휼은 따뜻한 손길이 되고 사랑이 있을 때 용서는 마음 깊은 치유가 되고 사랑이 있을 때 온유는 힘있는 겸손이 됩니다 이미 잘하고 있는 덕목들 위에 이미 쌓아온 신앙의 토대 위에 이미 하고 있는 사역과 봉사 위에 사랑을 더하라!!! 사람을 향한 사랑, 공동체를 향한 사랑,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을 다시 꽉 묶어 매라는 부르심입니다. 오늘 내가 한 사람에게 더 친절할 수 있다면, 한 번 더 용서할 수 있다면, 한 번 더 따뜻하게 말할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이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박지현 2026-02-27 세겹줄묵상
  • 짧은 묵상 롬 12장 10절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 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 사랑은 감정에서 시작하지만 성숙은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바울은 사랑을 말하면서 존경하기를 먼저 하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흐르는 감정이 아닙니다. 존중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선택하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보통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먼저 대접 받고 싶고, 먼저 이해 받고 싶고, 먼저 존중 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방향을 바꿉니다. "먼저 하라!" 존중은 경쟁이 아니라 자발적인 낮아짐입니다. 신앙은 내가 얼마나 높아졌는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낮아질 수 있는가로 측정됩니다. 교회 안에서, 가정 안에서, 관계가 무너지는 이유는 사랑이 없어서라기보다 존중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말투 하나, 눈빛 하나, 태도 하나가 상대를 살리기도 하고 꺾기도 합니다. 존중은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많은 사람은 사랑 받기를 원합니다. 인정받고, 존중 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사랑을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사랑을 시작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존중을 요구하는 자가 아니라 존중을 먼저 베푸는 자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먼저 하는 사랑”에는 힘이 있습니다. 먼저 손 내밀 때 마음의 문이 열리고, 먼저 이해하려 할 때 관계의 갈등이 풀립니다. 먼저 존중할 때 상대는 스스로 변화될 공간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늘 먼저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흐릅니다. 오늘 나는 존중 받지 못한 일에 예민한가, 아니면 존중을 먼저 선택하는 사람인가? 사랑은 따뜻함이고 존중은 깊이입니다. 사랑은 관계의 시작의 문을 여는 것이라면 존중은 관계 속에서 함께 오래도록 걷게 하는 일입니다. 오늘도 먼저 사랑하고 존중할 여러분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박지현 2026-02-27 세겹줄묵상
  • 짧은묵상 요일 4: 11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신앙의 출발은 우리가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이" 출발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괜찮아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완전해서 사랑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부터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의무 이전에 은혜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도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랑 받은 사람은 방향이 바뀝니다. 받기만 하던 사람이 흘려 보내는 사람이 됩니다. 계산하던 사람이 품는 사람이 됩니다. 따지던 사람이 이해하려는 사람이 됩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받은 은혜의 증거입니다. 만약 우리가 사랑하지 못한다면 사랑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받은 사랑을 잊어버린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마땅하다”는 말은 억지로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의미입니다. 깊이 용서 받은 사람은 용서할 줄 알고, 많이 사랑 받은 사람은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신앙은 감정이 아니라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는 관계의 삶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의지”이자 “은혜의 반응”입니다. 오늘 내 마음에 질문해 봅니다. 나는 사랑을 요구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사랑을 흘려보내는 사람인가? 은혜 받은 우리는 오늘도 사랑 안에서 걷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박지현 2026-02-27 세겹줄묵상
  • 짧은묵상 요일 4 :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은 인간의 성격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노력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양보하면 사랑할 수 있다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 이라고 . 즉 사랑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랑이 삶에 스며들고 흘러나옵니다. 사랑이 없다는 것은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연결이 약해진 것입니다. 햇빛과 연결된 창문은 빛을 통과시키고, 하나님과 연결된 영혼은 사랑을 통과시킵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못할 때, 자책감으로 나를 몰아세우기 전에 먼저 물어보십시오. "나는 지금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 오늘 나는 사랑하려 애쓰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조건 없이 사랑하셨고,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은 종종 부족하고, 흔들리고,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로 성장해 가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닮습니다. 용서할 때, 기다릴 때, 이해하려 할 때 우리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오늘도 넘치도록 사랑을 실천하실 여러분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박지현 2026-02-27 세겹줄묵상
  • 요 13 : 34 ~35 34절-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절-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는 종종 믿음을 설명하려 합니다. 말로 증명하고 논리로 설득하고 성과로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사랑의 기준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할만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성품 때문에 사랑하셨습니다. 내 기분이나 상대의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사실이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힘이 됩니다. 예수님이 보이신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기분 좋을 때만 흘러나오는 친절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십자가를 기준으로 한 사랑입니다. 용서받았기에 용서하고, 참음 받았기에 참고, 품어주심을 받았기에 품는 사랑. 세상은 우리의 신앙 고백을 듣기 전에 우리의 관계를 봅니다 사랑은 아주 작은 행동에서 시작됩니다. 조용히 들어주는 것, 먼저 안부를 묻는 것, 용서하려고 마음을 여는 것, 잠시 멈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것. 이런 작은 행동이 모여 공동체를 따뜻하게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사람들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사랑은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세상에 드러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정체성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사랑으로 드러나고 계십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박지현 2026-02-27 세겹줄묵상
로그인